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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왕세자빈 다이애나가 사망했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했던 그녀의 생애를 닮은 시속 170 km의 추돌사고를 애도하는 인파가 줄을 이었다. 다이애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유명 인사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파파라초의 행각이 문제되었다. 이태리의 명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59년 출세작 '라 돌체 비타'(달콤한 생활)에서 그 어원이 유래했다는 "파파라초"들의 집요한 사생활 추적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파파라초의 특종을 구입해주던 언론들 또한 다이애나 사망의
책임을 파파라초에게 묻고 있다. 영상매체의 발달과 이기적인 상업주의 결합이
빚어
사생활이 보호받지 못하는 삶이란 참으로 고독하고 견디기 힘든 것이다. "제발 나를 혼자 내버려 두세요(Please, leave me alone!)", 그녀가 최후로 남긴 말이다. 얼마전, 모 유명 백화점의 여자 화장실에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떠들석 했었다. 또 모 병원의 간호사실 탈의실에도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어
말썽을 빚었다고도 한다. 도난 사고에 대한 대비책이었겠지만, 화장실까지 들여다
보려는 것이 불법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끈질긴 감시의 눈길에 섬뜩한
느낌마져 든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독재자 '빅 브라더'의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흔히 정보화시대 하면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장미빛 환상은, 바꾸어 생각해보면, 우리가 숨을 곳이 이제 더 이상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 당신에게 흥미를 가진 사람이 당신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하면, 또
그럴만한 장비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위치뿐만 아니라 당신과 관련된 모든
사항들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아낼 수 있다.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의 하나인
"White Pages"는 지도에다 당신 집의 위치까지도 그려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수많은 은행, 신용회사, 국세청 등은 그들의 일상적인 업무를 통해서도 우리
모두의 재정적, 교육적 직업적 사항들에 대한 자세한 안내서를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광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 하물며, 기자나, 탐정, 정보부요원들이 얼마나
많은 정보들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 30대 가장이 자살했다. 그가 에이즈에 걸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때문이다. 사회와 가족에게 마져 버림받은 그가 설 땅은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24세의 한 미혼 여성이 약혼자에게 파혼당했다. 그녀의 친척중에 심각한 유전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있다는 것이 누설된 것이 그 이유였다. 결혼전 유산 기록이 알려져 파경을 겪은 부부들도 있다. 개인의 의료 진료 정보들은 매우 개인적이고 은밀한 것들이어서 자칫 노출되면 사생활 침해의 위험성이 무척 크다. 특정의 유전질환, 전염성 질환, 출산력, 정신장애 등의 정보 모두가 무척 "민감한" 정보들이다. 자신의 건강상태와 신체검사 소견등이 속속들이 노출된다면 아무래도 께름직스럽다. 간접적인 노출도 문제다. 어떤 사람이 병원에서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누설되는 것만으로도 프라이버시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
개인의 권리와 공공의 이익간에는 유서 깊은 갈등이 있다. 전염성 질환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1860년에 마마를 앓고 있던 한 선원이 퀸샬레 섬의 동쪽 해안에 내렸을 때, 불과 수년 사이에 하이다 마을 주민의 10%가 마마로 목숨을 잃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험한 상황을 개인의 권리 보호만을 위해서 방치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나는 의업을 통해 알게된 환자들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한 구절이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그 환자의 병력을 알아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환자는 의사가 그의 비밀을 지켜줄 것을 믿고 비밀을 털어 놓는다. 전통적으로
의사들은 무척 악필이다. 글씨를 읽기 힘들게 휘갈겨 쓰는 것이 가장 오래된
비밀 유지 수단이었다. 또 자기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어려운 말
종이기록이 전자매체보다 더 안전한 것은 아니다. 종이 기록은 운반도중 아무나 볼 수 있고, 그 과정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관여된다. 또한 보스톤 글로브사의 한 기자가 의사 가운을 입고 병원을 헤집고 다니면서 너무나도 쉽게 환자들의 챠트를 들쳐볼 수 있었다고 보도해 물의를 빚은 사건은 무척 시사적이다. 최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노력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일단 컴퓨터에 기록된 정보에 대해서, 정보에 대한 불법적인 침입을 최소로 막고, 꼭 필요한 사람만이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로지 의사와 간호사, 그외의 환자 치료에 직접적인 참여를 하고 있는 임상종사자들만이 환자의 의무기록에 접근할 수 있다. 물론 주치의가 먼 곳에 있고, 응급상황이 발생한 경우는 치료에 참여하는 의사에게 정보 접근 권한이 부여된다. 언제 어느곳에서 어떤 사람이 특정 정보를 열람했는가 하는 것이 전자서명으로 기록된다. 개인 비밀에 대한 윤리 교육도 수행된다. 오히려 종이 기록보다 그 보안성이 더 향상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의료정보가 병원내에 있을 때의 일이다. 예전에는 진료의 당사자인 의사와 환자이외에 누구도 의무기록을 열람할 권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경영을 위해서 진료정보를 요구하는 경영자는 물론이고, 의료보험공단에서도 광범위하게 진료정보를 수집한다. 정부 기관에서 수사 목적으로 보험회사에 자료를 요청하기도 한다. 의무기록의 병원내에서의 비밀 보장은 더욱 강화되고 있지만, 잘 정리되고
검색 가능해진 정보가 병원을 벗어나면 속수무책 남용의 소지가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병원이나 의사, 환자들의 통제를 벗어난 곳에서 이 복잡한 개인 비밀정보
보장의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와는 무관한 보험회사들의
윤리의식은 믿을만한가? 파파라초들의 극성에 중요한 정보를 넘겨주는 것은
아닐까?
프라이버시의 존중을 굳게 믿고 있는 우리들은 불법적인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침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최선을 다해 맞서 싸워야 할 것이다. 최소한 우리는 그런 훔치는 행위를 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만방에 알림으로서 그들이 공공의 비난 대상이 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끝으로, 정보화 시대의 문턱에서 우리가 한 가지 음미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정보화 사회가 되어 우리 자신에 대한 수많은 정보들이 축적되었을 때, 그 정보들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자신의 신체에 대해 시시콜콜히 기록한 의료정보는 지금까지 병원에서 기록하고 보관해왔으므로, 병원의 소유물이었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가 다가와서 사이버공간에 정보가 보관되고 어디서나 접속 가능해져도 그 정보가 계속 단위 병원 소유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제 정보의 주인을 찾아줄 때가 왔다는 것이다.
정보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병원에도 어느 정도 소유권이 있지만, 그 정보의
궁극적 주인은 그 정보의 원천인 환자 자신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에 대한 정보를 사용하려는 사람이 "오직 우리를 위한 선한 목적으로
사용할 때에만" 그 정보를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즉, "정보 사용의 실명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정보를 꼭 필요로 하는
진료의 당사자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그 정보를 알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보스톤의 한 병원 정보 시스템에는 환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파일에 누가 언제 어떻게 접속했었는지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러한 전자서명을 통해, 빅브라더나 파파라초의 접근을 막고, 선한 목적을 가진 정당한 사람만이 우리의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의사인
탓에 의료정보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개인의 권익과 비밀을 지키기 위해
개인에 관한 모든 정보에 대해서 우리들 천부의 권리를 지금부터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정보화 시대에서도 우리를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같은 불행한
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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