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 회사원인 김양은 얼마 전 무서운 경험을 했다. 회식 자리에서 빠져 나와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원인 모를 엄청난 공포가 엄습해 왔다. 갑자기 숨이 막히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손발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나고 숨이 거칠어졌다. "아.. 이렇게 죽고 마는구나.."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핸들에 머리를 파묻고 있던 몇 분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자 정신이 좀 들어,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 찾아가 자세한 검 진을 받았지만 별 이상 없으니 푹 쉬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하지만 이후로는 또 그런 일이 생 길 것만 같아서 운전은 물론이고 차에도 편안히 탈 수가 없게 됐다.
우리는 누구나 공포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 어둔 밤길을 홀로 걷다가 갑 자기 귀신이라도 따라오는 것 같은 공포에 혼쭐이나서 진땀을 흘리며 달아난 경험이 있을 것이 다. 우리는 왜, 때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일까? 태고적 인류의 삶 은 위험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사나운 맹수가 우리의 생명을 노리고 달려들지도 모르고, 천둥 번개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갑자기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곤 했다. 항상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근원적으로 공포는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경계신호와 같은 것 이고,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긴박한 명령인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극도의 공포 상태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을 공황 반응이라 한다. 또한 공황장애는 비교적 최근에 정신의학적 개념이 정립된 질환이며, 이런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분 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정상적 공포와 달리, 김양의 경우처럼, 아무런 현실적 위험이 없는데도 마치 죽을 것만 같은 공 포반응에 휩싸이게 되는 것을 공황반응이라 한다. 즉, 공황반응은 잘못된 혹은 과민한 경계반응 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포 반응이 상당기간 반복되면 정신의학적으로 공황장애로 진단한다. 치료하지 않는 경우 상당기간 지속되어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주며, 20대 후반에 가장 많고 여 성에게 더 많다.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은" 공포 반응이 20 - 30분 정도 지속된다. 흔히 동반되는 증상 으로는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나고, 몸에 떨리고, 열이 나거나 오한을 느끼고, 숨이 막히고, 가 슴이 답답하고 아프고, 어지럽고 현기증이 나거나 기절할 것 같은 느낌, 통제력을 잃고 미쳐버 릴 것 같은 두려움, 혹은 손발이 저리거나 따끔거리는 등의 이상 감각 등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심장 등에 문제가 있다고 믿고 응급실에 찾아가지만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이야 기만 듣게 된다. 한번 이러한 공포를 경험하고 나면 사회생활은 극도로 위축된다. 언제 어디서 다시 그런 일이 생겨서 길거리에서 쓰러져 버리거나 창피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 힌다.
공황장애의 원인은 뇌 생화학적 불균형과 같은 생물학적 원인과 심리학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상적 신체 감각에 대한 과민 반응성도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 예 를 들어, 계단을 오른 후에 심장이 급히 뛰는 것은 정상적인 생리작용인데, 이것에 지레 겁을 먹어서 내 심장에 큰 병이 생겼고 곳 죽을 것 같다는 걱정에 한 번 빠지면, 점점 더 자신의 심 장 박동에 과민해지고 불안은 점점 더 증폭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공황장애는 적절한 정신약물 및 심리 요법으로 비교적 잘 치유된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 는 경우, 약 10% 정도는 만성장애가 된다. 만성 공황장애 환자의 약 30%가 우울증에 빠지고, 60%이상이 다른 공포장애를 수반하며, 알코올중독, 약물의존, 건강염려증 등의 더 심각한 장애 로 이어지고, 가정불화나 사회 부적응등의 부작용도 흔하다.
치료에 앞서 먼저 상세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이는 몇 가지 신체질환, 즉, 갑상선질환, 내분 비장애, 저혈당, 약물중독, 등이 동일한 증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각 선행 신체 질환들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신의학적 치료의 기본은 우선 이 공황반응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 공포반응은 잘못된, 혹은 과장된 경계반응이다. 실제로는 아무런 위험요소도 없다. 자 신의 느낌과 달리, 실제로는 바로 질식하거나 심장이 멈추어 변을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 확히 알게되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상당히 호전된다. 공포 반응은 길면 30분까지 지속되고는 다 시 편안한 상태가 회복되므로, 잘 참고 기다리면 공포는 사라진다. 최근에는 이러한 인지적 측 면을 강조하는 치료법의 효용성이 널리 인정되어서 체계적인 시간표를 작성해서 자신의 인지적 특성을 하나하나 개선해 가는 훈련이 각광받고 있다.
한 가지 문제는 공포에 겁에 질려 숨을 심하게 몰아쉬는 경우이다. 숨을 너무 빨리 쉬게 되면 몸 속의 이산화탄소가 너무 빨리 씻겨나가 혈액의 산염기 균형이 깨어져 유사한 증상을 유발하 는 "과호흡증후군"을 경험하게 된다. 실제로 공황장애와 과호흡증후군과는 어느 정도의 상관관 계가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호흡조절 훈련도 많은 도움이 된다. 요령은 복식 심호흡을 아주 천 천히 하는 것으로 하루 10분 정도를 권한다.
약물치료는 특히 급성 공황반응 혹은 공황 발작을 막는데 가장 효과적이다. 대게 이미프라민이 나 알프라졸람등의 약물을 복용하면 급성발작 후 10 - 30분 이내에 공포상태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또한 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환자분들을 무척 안심시켜주어 예방적이기도 하다. 규칙 적으로 6 -12 개월 정도 복용하면 완치에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약물 장기 복용이 약물중 독을 유발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환자분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의사와 협조하면 약물중 단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약을 거부하고 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서 걱정이다. 술을 마시면 일단 공포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이는 술에 항불안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이 훨씬 더 위험함은 물론이고, 공황장애의 치료에도 무척 방해가 된다.
요약하면, 성공적 치료의 성패 여부는 환자-의사간의 따뜻하고 확고한 신뢰관계 형성과, 6개월 에서 1년간 잘 균형 잡힌 약물과 심리요법의 꾸준한 병행 치료에 달려있다.
김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