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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람 들 | ![]() |
호기심이 무척이나 많았던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엔 비행기나 기차같은 플라스틱 모델 만들기를 즐겼다. 중학생 때는 당시 유행이던 일렉트로닉스에 빠져서 앰프, 라디오, 무전기 등을 만드느라 땜납과 전기 인두를 들고 수 없는 밤을 지샜다. 다행히도 민주적이셨던 부모님께선 나의 이런 외도를 "공부 안하고 쓸데없는 짓만 한다고" 구박하진 않으셨다. 참 고마운 일이다.한데, 딱 한가지 내가 참을 수 없는 비평을 하셨다. "네가 라디오를 만드는 것은 그저 회로도를 보고 땜질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원리를 이해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 너는 그저 땜쟁이나 되려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 이건 참으로 모욕적이었다. "내가 겨우 땜쟁이가 되기 위해서 수 없이 밤을 새다니..." 약이 오르고 말문이 막혔지만, 중학생인 내가 전자기학의 원리를 다 이해할 수도 없었고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무언지도 몰랐다. 또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도 아니었다. 나는 바빴다. 해질녘까지 친구들이랑 농구나 공차기도 해야했고, 여학생도 쫓아다녀야 했고, 개구리, 피라미 잡으러 산에도 가야했다. 물론 공부도 해야했다.
어쨌든 내가 만든 라디오는 소리가 잘 났다. 사실 전자공학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가 즐겼던 것은 얼기설기 역은 저항이나 트랜지스터로 허공을 떠도는 전파를 잡아낼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었고, 그 어설픈 기계로 아나운서의 예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영어시간에 몰래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체 음악을 들으며 동시에 수업을 듣는 "풍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의 들키지 않게 특수 제작되었던 이 라디오는 내가 007의 멋진 제임스 본드라도 된 것처럼 느낄 수 있게도 해주었다.
하지만 라디오는 라디오에 불과했다. 나는 그 아나운서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그 아나운서는 혼자서만 지껄였다. 물론 내가 그 다음으로 만든 것은 무전기였다. 전 실력을 다 발휘해서 진공관으로 엄청난 출력의 무전기를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정부의 전유물이었던 전파 사용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경찰의 추적에 혼이 났던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HAM(아마추어무선통신)이라는 단어를 아는 독자라면 그 다음으로 내 가 시도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와의 "통신"에 대한 나의 많은 노력들은 결국 참담한 실패였다. 상대도 같은 장비를 갖고 있지 않는 한 무전기는 무용지물이었다. 또 이런 노력들은 너무 힘들어서 어린 나로서는 세상이 개혁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차라리 나았었다. 그것들은 결국 전화기만도 못했다. 더구나 요즈음의 무선 전화기랑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무선 전화기가 대량 보급되어 있는 지금 나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그건 전혀 그렇지가 않다. 무선이건 유선이건 전화기는 다 전화기일 뿐이다. 그것은 일상의 대화와 거의 다를 바가 없는 "낡은 통신 프로토콜"일 뿐이다.
전화기를 통해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가 있을까? 동성연애가 나쁜 건지 좋은 건지 물어볼 수가 있을까? 동시에 100명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전혀 모르는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으면서도 궁금 것들을 물어 볼 수 있을까? FAQ에서처럼 반복되는 질문들을 잘 모으고 정리해서 대답해 줌으로써 낯선 초보자들을 따뜻이 인도하는 온정을 베풀 수 있을까? 전화로 산타크로스나 ET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전화로 자기 자신과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전화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방은 여전히 일상 속에서 내가 아는 그 사람이고, 그래서 일상에서의 대인 관계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전화는 정말 훌륭한 물건이다. 사실, 전화선을 통해 형성되는 공간이야말로 "인류 최초의 진정한 사이버 공간"이었다.
분명히 전화에는 기존의 통신 프로토콜을 넘어서는 요소가 있다. 한 사람은 오밤중에 속옷 바람으로 다른 한 사람은 지구 반대편에서 이른 새벽에 넥타이를 메고 대화를 나누지만, 그러한 사실을 두 사람 모두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다. 일단 전화에 몰입하면 그것이 일상에선 있을 수조차 없는 이상한 광경이라는 일상의 예의범절을 자연스럽게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의 전화나 자동응답기 혹은 전화 폭력(사이버 공간 활용의 비뚤어진 예로서)과 같은 "기존의 통신프로토콜"을 넘어서려는 시도들도 있어왔지만 그들은 그저 정식을 벗어난 변칙적인 활용정도로 무시되었다.
불행하게도, "새로운 통신 프로토콜에 대한 열망"이라는 자유주의 추구 정신을 외면한 전화 산업은 "직접적인 대화"라는 "기존의 통신 프로토콜"을 강화하는 방향만을 집요하게 추구하여 그 스스로의 진화 방향이 사이버 공간의 도래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한 사용법의 고집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은 모뎀에 의한 데이터 통신의 보급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사이버 공간의 확장으로 명확해졌다.
사람들은 기존의 대화 이상의 대화를 원한다. 사람들은 더 자유롭고 더 무한한 만남과 대화의 형식을 원한다. 태고로부터 인류(Homo Communicus)가 그들 자신의 통신 프로토콜로서 "말"을 발전시켜온 원동력은 바로 이러한 본능적 열망이었다.
필자가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구나 하는 것을 거의 동물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통신망이 여의치 않았던 애플 시절에는, 작은 프로그램을 마치 게시판처럼 이용하여 사람들간의 상호작용을 할 수야 있었지만, 단지 애플 베이직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기계와 상호작용하는 정도가 가능했었다. 필자는 너무나 멍청한 이 기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하드웨어나 프로그래밍 기법을 익히는데 "낭비"해야만 했다.
91년 텔넷으로 처음 인터넷 접속에 성공하여 UCLA의 어느 도서관을 뒤지고 다녔을 때의 감흥을 잊을 수가 없다. 태평양을 힘겹게 건너 내 파란 화면으로 한 자 한 자 날아드는 백색 글자들의 적막한 몸부림은 차라리 숨막히는 감동이었다. 마치 바닷가의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대양을 본 것처럼 그것은 문자 그대로 새로운 세계였다. 당시에 유명하던 Newton BBS에 몇 마디 글을 쓰고 안 되는 영어로 토론을 벌인 것은 그 느려터진 답답함(960bps?)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라디오 만들기에 성공했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놀라움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만남과 자기 표현과 상호작용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을 원한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통신'이라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기계적인 이름속에 가두려는 오류를 범한다. 우리의 자유로운 정신은 멈춰서거나 기존의 문법에 얽메이기를 거부한다.
필자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컴퓨터 앞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거기에 투사된 것은 "전자회로의 원리"도 "프로그래밍 기법"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무한한 동경, 호기심, 열정, 그리고 소망이었다. 내가 그토록 찾아다녔던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그 순간 선명해졌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관한 것이었다.
"컴퓨터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은 마치 백지가 무엇이냐는 질문과 같다. 컴퓨터를 "복잡한 계산 기계"라고 답하는 것은 종이가 나무에서 얻은 펄프를 가공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얇게 다져진 섬유조직이라고 답하는 것처럼 지리하고 어리석다.
마치 백지처럼, 컴퓨터는 "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 "투사된 당신의 자아상"이다. 이제 그것은 전자회로하고는 거의 상관조차 없다. 컴퓨터 앞에 앉은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자유로운 상태로 유지한 채, 여기 저기 눌러 보면서 항해하고, 탐색하고, 그것을 즐겨 보라. 마치 한가한 남국의 섬으로 휴가라도 나온 사람처럼 사이버 공간의 인류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감정을 나누어 보라.
그 상호작용 속에서 당신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일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지구라는 실제 공간처럼 또 하나의 삶의 터이다. 더구나 이 막 열리기 시작한 이 새로운 공간은 획일적인 표현이나 통신수단만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의 몸부림을 그치지 않는 영원히 태고적인 공간이다.
이제 컴퓨터를 더 이상 배우지 말자! 공부나 업무에 필요한 만큼만 배우고, 쓸데없이 컴퓨터의 하드웨어나 파스칼을 배우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그러면, "어설픈 땜장이"가 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 것은 컴퓨터 공학자나 전문 프로그래머에게 맡겨버리자. 컴퓨터 실력이 부족하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자. 초보자에게 컴을 알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된다고 으시대면서 어려운 문법책을 내밀지 말자.
물론 그런 것들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무슨 금단의 비밀이기라도 한 양 현혹시키지 말자. 그것은 마치 좋은 글을 쓰려면 종이와 연필의 구조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만큼이나 현학적인 것이다. 전화기의 내부 구조를 잘 아는 사람이 전화를 가장 현명하게 쓸 것이라는 가정은 너무도 터무니없다.
당신이 지금 이메일을 쓸줄알고, 그저 브라우저정도를 실행시킬 줄 알아서 인터넷 한 군데라도 접속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냥 컴퓨터와 친해지자. 컴퓨터 내부에 대해 이해하려고 너무 노력하지 말자. 단지 컴퓨터로 연결된 사이버 공간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자.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의사소통을 체험하고 또 창조해 가자. 이미 그 곳에 이주한 인류들의 문화로부터 많은 삶의 지혜를 배우자. 사이버 공간에서의 삶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배우자. 사이버 공간에서의 생동적인 삶의 체험은 마치 백지나 우리를 비추어주는 거울처럼 자기 자신의 자아와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환하게 비추어주는 놀라운 체험의 장소다. 우리의 삶에 대한 자각은 그저 컴퓨터 기술이나 배워서 벌어들일 수 있는 돈 몇 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이다.
1998.2 김 주한 internet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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