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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 는 사 람 들 | ![]() |
신화를 잃은 현대인에게 사이버스페이스는 무척 매력적인 무대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바로 변환, 재생, 불멸과 같은 태고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신화의 세계다. 먼 옛날에는 신화와 전설이, 농경사회에서는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산업사회에서는 소설이나 TV가 수행했던 기능들을 정보화사회에서는 아마도 사이버스페이스가 맡으려는 듯 하다.
어느 공휴일의 이른 봄날 아침, 그래서 구두끈은 풀어져있고, 창가 작은 원탁에선 커피가 끓고있 다. 창가에는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모퉁이에서 바둑이가 나른한 듯 하품을 한다. 지금쯤 신선 한 우유가 배달된다면 좋겠다. 아! 음악이 곁들여지면 얼마나 축복 받은 아침일까! 무슨 곡이 좋 을까......지금쯤 머릿속에 모짜르트나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혹은 이런 분위기에 잘 맞는 영화음악이나 가요구절이 떠올랐다면 당신은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386이전 세대(30대의 나이, 80년대 학번, 60년 대생)임에 틀림없다. 당신은 인터넷이나 멀티미디어는 말할 것도 없고 멀티태스킹(Multitasking: 다중작업)조차 제대로 되지 않던 불우한 시대에 당신의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이 싱그러운 창가에 갑자기 커다란 박쥐 한 마리가 커피잔에 날아들어서 호들갑스럽게 웃어대면서 마이클잭슨 춤을 춘다면 어떨까? "징그럽고 괴상해!"가 아니라, "참 재미있고 독특한 발상이군..." 하고 받아들 일 수 있는 당신은 분명 신세대일 것이다.
발달된 매체의 보급은 우리의 두뇌에 일관성 없는 대량의 정보를 마구 집어넣어서 우리를 변화시 켰다. 눈시울을 적시는 슬픈 드라마가 막을 내리고 잠시 그 슬픈 감정을 음미하려 할때 갑자기 익살스러운 감기약 광고가 쏟아져 나온다. 눈시울을 적시는 것은 어른들뿐이다. 아이들은 벌써 TV채널을 코미디만화로 바꾸어 놓고는 깔깔거리고 있다. 슬픈 일이 생기면 온 집안 식구가 몇날 며칠을 애도하고 즐거운 일이 생기면 온 동네가 함께 즐거워하던 일들은 정말로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멀티테스킹, 멀티미디어, 인터넷 등의 보급은 TV마저도 진부한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멀티미 디어형 신세대는 즐거운 댄스음악과 비행기 추락사고 애도방송을 동시에 한 스피커로 들으면서 손으로는 자판을 두들겨 친구와 채팅을 즐길 수 있다. 지극정성으로 살아온 부모세대는 이를 진 정으로 이해 못한다. 도를 닦듯이 해야 할 공부를 염색한 펑크머리로 라디오 음악에 젖어서 한다 는 말을 이해 못한다. 그들에게 있어 이러한 신세대 문명은 진정으로 '분열적'인 것이다.
하지만 신세대의 생각은 다르다. "난 정말로 그 비행기사고가 슬프고 끔찍해, 또 친구와의 채팅은 참 즐 거워, 이 댄스음악을 들으니 멋진 춤이 떠오르는군, 내일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좋아할 거야..." 그 들에게는 이러한 '사고와 감정의 멀티태스킹'이 진정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 혼돈 이 아니고 이질적인 것들의 조화를 감당해내는 정신적 역량인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의 확장과 함께 이러한 인간정신의 분열적 능력은 '사고와 감정의 멀티태스킹'을 넘어서 다중인격의 멀티태스킹을 구현한다. 한 사람이 여러 아이디로 다양한 인격을 바꾸어가며 채팅을 즐기는 일은 아주 흔한 것이고, MUD(Multiple User Dungeon)나 MOO(MUD Object Oriented)의 출현으로 배우가 배역을 바꾸듯이 미리 정의된 인격들로 바꾸어가며 활동하는 것이 장려되고 있다. 인터넷상의 많은 아이디들이 실제의 성별과 반대의 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전환(Gender Surfing) 아이디의 진짜 성별을 알아 맞추기 게임(outing)도 성행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이 시도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분열을 넘어선 현존재초월(現存在超越)과 변신환생(變 身還生)의 강렬한 소망이다. 배우가 되려는 사람들의 무의식적 동기는 다양한 존재양식 체험의 소망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일반인들에게도 다중인격체험(여러 아이디로 활동)의 짜릿한 경험을 가 능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이제 네티즌은 동물, 축구공, 번개 등의 의인화된 다양한 화신(avator)으로까지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광고문안에서처럼 그들은 진정으로 "같은 모습으론 단 일초도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내 UFO는 오지 않는거지? 난 지구에 살지 않아!"하는 또 다른 신세대 광고의 주장에 서처럼 그들은 이미 변신에 대한 자신감도 얻은 것 같다. 이 두 광고문안 모두가 태고로부터 인간변신의 기본 도구이던 화장용품 광고라는 점도 흥미롭다. 물론, 광고주의 의도는 신세대의 변신 소망을 자극해 매출을 증대시키려는 것이다.
네티즌의 변신체험은 심심풀이로 해보는 유희가 아니다. 실제로 채팅 중에 모욕적인 언어적 공격 (flame)을 받고 극도로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거나 채팅상대에게 실연당해 실의에 빠지는 일은 무척 흔하다. 실연당한 여자 아이디의 실제 주인이 남성이었다 할지라도 그는 거의 버림받은 여인의 감정을 체험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러한 감정이입은 보편적인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소 꿉장난을 통해서 엄마나 아빠가 되기고 하고 진정으로 부부싸움을 하기도 한다. 어린아이들은 진지하게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유연한 사고와 풍부한 환상을 소유한 어린이는 소꿉놀이 소품이 엉성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환상을 즐기기 위해서 가상현실기술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그들은 무의식적 환상활동을 통해서 그들에게 무척 중요한 인물들의 대역을 스스로 맡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미지의 공포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거나, 언젠가 그들이 진정으로 부모가 되었을 때를 미리 대비하기도 한다.
인간의 문화는 항상 어떠한 전형적 인간유형을 창조하며 진화해 왔다. 구약시대의 십계명에서부 터 유교주의적 인간형에 이르기까지 사람이란 모름지기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형상이 창조되어 왔다. 법과 도덕률을 통해 지켜져 왔으며 교육을 통해 세습되어져 왔다.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의 물 리적인 제약에 의해 우리들의 자아는 비교적 일관된 형태로 개발되었다. 그 사회의 생산수단이 단순할 수록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도 단순해지고, 사회의 생산방법이 단순반복노동에 가까울수록 개개인의 신화적 환상은 점점 더 통제된다.
현대산업사회는 환상을 통제하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미신적인 환상은 사라져야 한다.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서처럼 우리 모두는 질서정연한 세계의 부속품이 되어야 한다. 현실세계의 물리적 제약과 함께 획일화된 인간의 대량복제에 가장 크게 기여해온 도구는 아마도 메스미디어의 총아 인 TV일 것이다. TV는 그 유용성과 편리함과 일방성으로 우리의 환상이 활동할 틈을 조금도 주지 않고 마음대로 정보를 주입했다.
그러나, 인간정신의 근원적 에너지는 스스로를 한 시대에 묶어두려 하지 않는다. 이 힘은 항상 스 스로를 새롭게 재창조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산업사회가 인류 최후의 유일절대의 세계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은 지속적인 변화다. 말을 배우고 걷고 생각하는 힘이 갑자기 나타나는 어린아이의 1년은 성인기의 10년간 보다 더 격정적으로 변화한다. 어린아이는 이러한 변화무쌍한 세계에 지속적인 환상작업을 통해서 적응한다. 이것이 변신환생 소망의 근저에 있는 인간정신의 무한한 가능성이다. 다시 말하면 이 인간정신의 근원적 힘은 어린아이의 소꿉놀이에서처럼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항상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티즌의 환상작업과 변신소망에 몰두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변화무쌍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를 잃은 현대인에게 사이버스페이스는 무척 매력적인 무대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실제 세계에서 존재하던 현실의 물리적 제약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정신의 신화적 존재가 가능해진 다. 나아가 환상동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도 MUD나 가상현실과 같은 다양한 도구를 제공한 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바로 변환, 재생, 불멸과 같은 태고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신화의 세계다. 먼 옛날에는 신화와 전설이, 농경사회에서는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산업사회에서는 소설이나 TV가 수행했던 기능들을 정보화사회에서는 아마도 사이버스페이스가 맡으려는 듯 하다.
현대 산업사회는 적어도 분열적이고 복잡한 인간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다. 숙련 공이 되어서 한 가지 직업을 성실히 수행하기에 이들의 욕구는 너무 복잡하고 변덕스럽기 때문이 다.
다가올 정보화사회에서는 어떨 것인가? 불행하게도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지 못한 다. 정보화시대가 그 '정교한 정보 통제 능력'으로 조지 오웰의 경고처럼 고도의 통제화 사회로 치닫는다면 산업사회에서 보다도 더 획일화된 부속품으로서의 인간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 지금의 자유분방한 분열적 성향이나 환상작업은 무가치하거나 위험한 정신병리로 낙인찍히고 핵커 들은 사이버스페이스의 음침한 구석에서 또 다른 천년의 세월을 방황해야 할지도 모른다.
역으로 정보화시대가 그 '상호반응성'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속성'으로 인해서 사회의 다양성과 예측불가능성을 더욱 증대시킨다면, 그래서, 자유로운 인간정신의 더 많은 참여를 요구하게 된다 면, 인간정신의 분열과 통합, 변신과 재생의 자유로운 조화를 추구하였던 네티즌의 새로운 인간정신 창조실험이 가장 가치있었던 것으로 지목될지도 모른다.
문화충돌은 항상 많은 정신병리를 유발하며 또 그 안에서 새로운 인간정신의 탄생을 예고한다. 아직은 개념에 불과한 정보화시대가 정말로 도래하고, 또 그것이 진정으로 지금과는 다른 세계라 면 이 거대한 문화충돌의 최전방 지역은 사이버스페이스일 것이다. 소꿉장난이나 전쟁놀이를 하는 어린아이에서처럼 인간 정신의 이 근원적 에너지는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목격한 사이버스페 이스 초년병들을 통해 이미 새로운 문명의 미래를 점치기 위한 '가상전쟁게임(war simulation game)'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1997.7 김 주한 In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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