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읽 는 사 람 들 | ![]() |
사이버 공간은 확실히 만남의 장소다. 또한, 헤어짐의 장소이기도 하다. 삶이란 곧 끊임없는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사이버 공간 또한 우리들의 삶의 장소이다. 나는 이 두 공간 모두를 사랑한다. 그런데,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인데도 사이버 공간과 실제 공간에서의 만남의 색조는 왜 이다지도 다른 것일까?
필자는 얼마전 무척 반가운 이메일을 받았다. 필자가 일하는 병원에서 아무 대가 없이 수고해 주시는 고마 운 자원 봉사자 한 분이 "선생님! 제가 인터넷에서 선생님을 발견했어요!"라는 편지를 보냈다. 필자의 홈페 이지를 우연히 발견했던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이 조우를 시작으로, 몇 차례 정겨운 이메일이 오갔다. 알고 지내던(실제 공간에서) 사람이었건만,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만남의 색조는 무척 달랐다.
언젠가 한 모임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와의 만남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우리는 이미 사이버 공간에서 만났었던 것이다. 이 놀라운 실제 공간에서의 첫 만남에, 나는 너무나 놀라고 쑥스러워, 황급히 그 자리를 빠져 나오고야 말았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일한 사람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확실히 만남의 장소이다. 또한, 헤어짐의 장소이기도 하다. 삶이란 곧 끊임없는 만남과 헤어 짐의 과정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사이버 공간 또한 우리들의 삶의 장소이다. 나는 이 두 공간 모두를 사 랑한다. 그런데,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인데도, 사이버 공간과 실제 공간에서의 만남의 색조는 왜 이다지도 다른 것일까......
만남과 헤어짐의 의미가 점점 더 퇴색되어 간다고들 한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고 한 다. 인스탄트식의 만남을 신세대의 성격 취향이 경박하기 때문이라 탓하기도 한다. 정말 우리의 문화가 경박 한 방향으로 잘못 진화한 탓일까?
캐퓰랫가의 축제에서 서로에게 매혹된 로미오와 줄리엣의 열정적인 만남은 결국 단 사흘간의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새로운 만남은 때로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야 만다.
만남의 의미가 컸던 만큼, 만남의 형식 또한 조심스러웠다. 손수건을 떨어뜨리거나 애꿎은 발을 밟는다. 고의로 자동차 사고라도 낼 정도이고 보면, 새로운 만남을 위한 우리의 시도는 때로 처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새로운 만남을 위한 이런 고전적 인 방법들은 이 도령과 춘향의 첫 만남에서 방자와 향단을 통해 하는 대화처럼 모두 간접적이었다. 배비장은 애원하는 애랑에게 생 이를 뽑아준다. 이를 뽑아 정표로 주는 일이 예전에는 실제로 꾀 흔했고 보 면, 헤어짐의 의미도 지금보다는 좀더 진중했었던 것 같다. 헤어진 후의 그리워함의 진중했음도 마을마다 전 해지는 망부석의 전설을 통해 알 수 있다. 정표를 꺼내 보며 그리움을 달래기도 하지만, 님의 마음은 고사하 고, 생사도 알 길이 없으니 애간장이 탄다. 해마다 오작교에서 누리는 재회의 시간도 곧 이은 이별의 아픔과 기다림으로 무섭게 달려간다.
문명의 발달은 우리들의 만남과 헤어짐의 형식을 변화시켰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의 형성과 교통의 발달로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많아졌다. 매일 만원 지하철에서 살을 맞대고 서 있어야만 하는 현대인들에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왠지 실감이 안 간다. 예전엔, 한 번 헤어진다는 것은 정말로 영원한 이별을 의미했 을 것이다. 전화나 우편조차도 없던 시절에 천리 밖으로 떠난 사람을 도대체 무슨 수로 찾아낸단 말인가? 또한, 한 번 헤어지려면 그것이 영원한 것임을 각오해야 했다. 생으로 치아라도 뽑아서 정표로 줄 법도 하 다. 반대로, 사실은 마음이 없는 것이지 다시 만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닌 경우라도, "산이 막혀, 혹은 물이 막혀 못 간다"는 그럴듯한 핑계가 통했을 것이다. 오신다던 님이 안 오시니 애간장이 탄다. 망부석이 되는 것만이 우리의 감정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 시간과의 싸움에서 견디는 길이었는지 모른다.
매체의 발달로, 이젠 예전처럼 영원히 이별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필자는 지금 미국 여행중이다. 보스턴의 한 기차 안에서 쓰고 있는 이 원고는 이메일로 보내질 것이다. 끈질긴 편집인의 독촉과 노트북 컴퓨터와 인터 넷의 보급으로, 이젠 물리적 위치가 우리의 만남에 장애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서' 전화나 우편을 사용한다. 그러나, 기존의 매체는 우리가 원하는 시각에 원 하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연결해주지는 못했다. 우리는 집이나 사무실로 전화를 걸지만, 우리가 만나려는 것 은 상대방의 사무실이나 집이 아니다. 이러한 시간적 공간적 불일치를 해결해주는 무선 전화기나 삐삐의 급 속한 보급은, 직접적인 만남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대변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모두에게 개인 고유 통신번호 를 부여한다고 한다. '이리듐 계획'으로 수십 개의 인공위성을 띄워서 지구상 어디에서나 직접 통신이 가능 해진다고 한다. 이젠 그가 사이버 공간(전화 통화로 형성되는 공간이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사이버 공간이다) 에 살고 있는 한 찾아낼 수 있다. 만날 수 없는 것은 '산이 가로막아서'가 아니다. 이젠 서로를 "만나고자 하 는 마음과 뜻"이외에는 아무 것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모든 만남의 형식은 사이버 공간을 통한 만남의 형식을 따르게 될 것이다. 우연한 만남의 기회는 늘어갈 것이고, 마음과 뜻만 있다면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도 예전보다 쉬워질 것이다. 살고 있는 한 헤어 짐이란 잠시 안 만난다는 것일 뿐 영원한 이별은 아니다. 헤어짐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서로 '만나지 않겠다는 뜻'이거나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다는 무관심의 표현'이거나 '바쁜 다른 많은 일로 신경을 잘 쓰지 못하는' 경우뿐일 것이다. '산이 막혀서나 바다가 육지가 아니라서 못 만난다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다.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우리의 주인의식"은 더 향상될 것이다. 오작교 없이도 채팅을 즐기거나 무선 전 화로 통화하는 견우와 직녀를 상상해 보자!
만남에 대한 우리의 "감정"도 "진화"하고 있다. 신세대의 감정 표현은 참으로 솔직하고 직접적이다. 그룹 '자 자'의 '버스 안에서'라는 곡에서 신세대 풍의 만남을 엿볼 수 있다. '너의 진심이 무엇이냐?'며 직접적으로 상 대의 마음을 묻고, '마음이 확실하면 망설이지 말고 말하라'고 격려한다. 만남의 기회가 귀했고 경험도 적었 던 옛 세대의 미묘한 감정 묘사(만남의 설레임을 다룬 옛 노래들)는 왠지 우회적이고 번잡스럽게까지 느껴 질 것이다.
신세대들을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이해한다. 감정을 통제할 자신도 있어 보인다. 괜스레 손수건을 떨어 뜨리는 식의 불필요하고 복잡스러운 군더더기는 빼자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헤어짐이 다가와도 서로의 마 음이 다한 것임을 솔직히 이야기할 것이다. '바다가 앞을 막아'라는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만남도 헤어짐도 우리 마음의 문제"라는 우리가 직면한 책임을, 이제는 우리의 감정이 솔직히 받아들인 것 이다. 만남의 형식이 변화하는 것을 과거의 잣대로 인스턴트식이고 경박한 것이라고만 탓할 수 있을까? 도시의 형성과 통신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의 형식을 변화시키고", 결국은 "우리의 감정도 이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진정으로 느끼고 있는 것을, 단순히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 지는 경박함으로만 탓할 일은 아닌 듯하다.
문명의 발달에 따른 감정의 진화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켜갈지는 알 수가 없다. 해마다 오작교를 건너 그 리운 사람과 해후하는 견우와 직녀의 사랑은 그 1년간의 애틋한 기다림으로 해서 아름답다. 하지만 1년을 기다리지 않고는 만남이 있을 수 없다는 상황 설정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미래의 인류가 "조상들의 원시적인 애틋한 감정"을 이해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라면 필자의 지나친 기우일까?
이메일 때문에 편지지에 곱게 써 내려간 편지의 운치가 사라졌다고 아쉬워한다. 그렇지만 이메일 이전에는 편지 쓰기를 무척 싫어했던 필자 같은 사람이 요즈음은 하루도 쉬지 않고 자판을 두드린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꼭 우리 세대가 메마른 탓만은 아닌 듯 하다. 서신 교환의 절대량은 늘어나지 않았을까? 이글도 이처럼 언제까지고 사이버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1997.7 김 주한 Internet![]()
![]()